분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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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 일로읍 토지 땅 밭 매매 계획관리지역 도로 접 논도 있음
무안 전원주택 창고 신축적합 일로읍소재지 1㎞거리에 있음
무안 투자가치 있는 토지 땅 밭 전 매매 소재지에서 근거리
무안군 일로읍 용산리 토지 매매합니다.
면적은 3,352㎡이며 4억500 만 원입니다.
용도지역은 계획관리지역입니다.
지목은 전입니다. 밭입니다.
창고, 전원주택 , 상가 등 다양한 용도로 적합합니다.
답도 있습니다. 면적은 1,916㎡이며 4,900만원이고 농림지역
입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은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본 토지가 있는 용산리는 일로읍소재로부터 몽탄 쪽으로 1㎞
가량 떨어져 있으며 811번 지방도로가 지나고 있습니다. 본래
무안군 일로면 지역으로서 용산리의 주산이 복개산이라고 합니다.
예전에 바닷물이 복개산 아래까지 들어왔을 때 산의 맥이 마치
용이 바닷물을 향해 뻗어 있는 것처럼 보여 용산이라 하였으며
1910년에 목포부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동정리, 공수동, 월성리, 송암리와 회인동의 각 일부를 병합
하여 다시 무안군에 편입되었습니다.
문헌으로 지명의 변화를 살펴보면 1789년의 호구총수에는 노촌면
동정리 덕림리 월성리 월하촌리 평정리 등이 있었으며 이후 1912
년의 자료에도 일로면 송암리 용산리 회인동 덕암리로 나오며 1917
년의 자료에는 일로면 용산리 동정리 월야촌 공수동 송암리 용산리
산정리 회인동으로 변경 되었으며 1987년의 자료에는 일로읍 용산
리 인동 송암 농장 연화동 평정 백호동 등이 들어 있습니다.
1920년대 일본인에 의해 영화농장이 들어서면서 농장 백호동 등의
마을이 들어섰으며 현재는 인동 농장 평정 백호동 연화동 월성 등
6개 마을로 이루어졌다. 자료에 따르면 조선시대에 연화동과 농장
마을 일대에 공수전이 있어서 공수동으로 불렀다는 기록도 있고
농장 마을에 김시라 생가와 광주시 지정 인간문화재인 서창순의
기념비가 있습니다. 또한 용산 마을에 해주오씨 제각인 영사재와
왕뫼에 나주정씨 제각이 있으며 인동마을 주변에는 여러 기의 고인돌이
있습니다.
본 토지 부근에 있는 인동 마을은 일로읍에서 몽탄 방면으로 1㎞
가량 가면 나오는 마을로, 마을 앞으로는 811번 지방도로가 지나고
있으며 행정 구역명으로는 일로읍 용산1리로 이 마을뿐 아니라 왕뫼,
연지원, 송암을 포함하고 있으며 해주 오씨 집성촌입니다.
무안군에서 발행한 마을유래지에 따르면 ‘인동’이란 마을 이름의
유래는 ‘마을뒷산이 용의 형상이고 마을 앞 우물에서 용이 승천하니
주위의 어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 하여 이름 하였다’고 하는데
호구총수에는 인동이란 이름이 나오지 않고 일제강점기의 자료에도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주 오씨 대동보나 각종무덤의 묘비
등에는 한결 같이 이 마을의 이름을 용연동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마을에 있는 용샘을 지칭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주민들도
언제부터 현재의 이름으로 불려 졌는지 모르고 있으나 선조들이 용연동
이라는 지명을 사용했다는 말을 듣고는 대체로 이해하는 모습입니다.
이 마을의 입향조는 해주오씨 오한규이며 입향 연도는 1700
년대 후반으로 해주 오씨 대동보에 따르면 ‘입향조는 1748년에 의금부
도사의 교지를 받고 활동하다 이후에 종3품인 증직대부로 승진하면서
관직을 버리고 남악에서 이 마을로 들어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안에 해주오씨가 처음 들어온 것은 1600년대 초로, 호조참판을
지낸 오숙기가 자연을 찾아 삼향읍 남악에 자리를 잡으면서 부터이며
그는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웠으나 임란이 평정되자 벼슬을 버리고,
자연에 뜻을 두어 살기 좋은 곳을 찾아 이곳으로 내려 와 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이후 그는 ‘세간의 득실을 마음에 두지 않고 효우,
문행으로 세월을 보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안문화원에서 6대에 해당되는 오한규가 벼슬살이를 하다가 남악
에서 분가하여 이 마을에 들어온 것이며 지금도 마을에 있는 해주오씨
사인공파 종가에는 입향조가 받은 의금부 도사 교지를 비롯, 오세기의
함경북도 관찰도주사에 임관한다는 광무10년에 발행한 교지와 그 외
문중의 어른들이 받은 성균관 박사 교지 마패 등 각종 문서들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마을 앞 들 가운데에는 용샘이 있으며 이 샘은 마을의 주택과 떨어져
있는데 67년 68년 대 재해에도 물이 마르지 않고 계속 흘러 넘쳤던
유명한 샘이라고 합니다. 또한 샘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여
인근에서 보기 드문 좋은 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도 손을 넣으면
시릴 정도로 맑고 깨끗한 물이 콸콸 솟구쳐 올라 흐르고 있습니다.
마을 앞에 솔대목의 터가 있으며 이 마을에서 성균 진사가 배출되었음을
기념하여 마을 주민들이 기념물을 세워 두었던 곳인데 일제강점기 일본인
들에 의해서 터가 없어져 현재는 감나무가 심어져 있는 밭이 되었습니다.
주인공은 해주오씨 오복근으로 조선조 말에 과거시험에 급제하여 이 지역
에서는 드물게 성균 진사가 되었던 선비입니다. 그가 성균박사가 되어 내려
올 때는 그를 보려고 인근의 마을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어 집이 무너
졌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주민들 사이에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 마을은 일로에서 일등 가는 마을이며 터가 좋아 인물이 많이 나오고 재물이
넉넉하니 인심이 좋고 후손들이 잘 되니 조상들의 은덕이 깊어 주변 마을에서
부러워하는 마을입니다. 또한 샘이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덕을 베풀었으며
풍수상으로 길지에 자리 잡고 있어 사사로운 잡기가 가까이 하지 못해 커다란
변고를 겪지 않았던 마을이기도 합니다.
무안문화원마을회관 건립 때, 다른 마을에서는 전부 군의 보조를 받아 지었으나
이 마을에서는 국가의 지원을 받아 세웠습니다. 회관 자리에는 아름드리의
구수나무 당목이 있었으나 오래 전에 말라 고사되었습니다.
예전에 이 마을이 영산강 해변가에 해당되었음을 증명하듯이 많은 지석묘가 남
아 있으며 왕 뫼에 9기가 있으며, 해주오씨 문중 산인 안산에는 13기의 고인돌이
있으며 또한 송암 마을에도 고인돌이 있어 인동마을을 둘러싸고 고인돌이 광범
위하게 퍼져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주민들의 이야기로는 예전에는 더 많은
지석묘가 있었으며 또한 안산에는 해주오씨의 제각인 영사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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