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권
|
|
 |
곡성 섬진강 보이는 주택매매 단독주택매매 전망 좋음 공기청정지역
곡성 강변주택매매 깨끗한 주택매매 한적하고 조용한 주택 매매
곡성 섬진강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주택 전망 최상 내부 깨끗
곡성군 오곡면 침곡리 2층 주택 매매합니다.
대지의 면적은 403㎡이며 건물은 99㎡입니다. 층수는 2층건물입니다.
매매가는 2억5천만 원입니다.
구조는 목구조로 되어 있으며 방은 2개이며 거실이 넓습니다.
내부에 입식주방과 화장실이 구비되어 있습니다.
용도지역은 보전관리지역입니다.
방향은 남동향입니다. 건축년도는 2017년 9월11일입니다.
난방은 기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식수는 지하수를 사용하고 있으며 텃밭이 있어 간단한 식재로는 해결 할
수 있습니다.
집안에서 보면 섬진강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물론 야생화와 철쭉꽃 들이
피는 계절에는 아름다운 풍경들이 감탄사를 자아내게 합니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온화하게 잘 지어진 주택입니다.
심신을 정화하거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수양을 하기에는 아주 좋습니다.
본 주택이 위치하고 있는 오곡면은 백제 문주왕 때 곡성군을 욕내라
칭하고 당시 읍을 죽곡면 당동리에 두다가 신라 경덕왕 16년에 곡성이라
개칭 했던 곡성의 예속촌으로 고려 현종 때 곡성과 함께 승주군에 이속 되었고
조선조 태종13년에 남원도호부의 관할하에 들어가 선조 30년 동부로 합하였다가
광해원년에 동부로부터 분할됨에 따라 복구 되었고 광부3년 곡성군으로 개칭됨에
따라 오곡면 상도방면의 우곡면과 하도방면의 오지면이었던 것을 서기1914년 행정
구역 변경에 따라 양면을 병합하여 오곡면으로 개칭하게 되었습니다.
1973년 1월1일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오곡면 묘천리가 곡성읍으로 구분되어
가고 오지8구가 1983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오지6구에서 분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본 주택에서 근거리에 있는 침곡 마을은 유 씨 종산에 묘를 쓰던 중 침혈의 명당이
나타나 침실이라 하였는데 1914년 침곡이라고 변경 되었으며 일제강점기 당시 산림
자원 운반을 위해 침곡역이 있었으나 1945년 광복과 함께 폐역 되고 금은을 채광한
광산이 근년까지 존속되어 오다 현재는 휴광상태로 있습니다.
송정마을 은 섬진강으로 흘러드는 도산천가에 소나무 정자가 있어 경치가 빼어남
으로 "솔정자" 의 "소정", "쇠정" 하다가 1914년 송정리라 하였으며 옛 송정마을
(쇠정이)터에 심청과 효를 테마로 한 이야기마을이 조성되어 전통한옥 초가집
팬션과 공원이 있어 많은 체험객이 찾고 있는 중입니다.
서봉마을은 풍수설의 비봉포난혈에 따라 봉이 깃들인다는 뜻으로 서봉이라 불리
우고 또 말골 마을이라고도 하는데 곰방산의 명당설을 쫓아 말골이라 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현조마을은 330년전 순흥안씨 선산에 묘를 쓰던중 검은 새 한 마리가 날아가고
한 마리는 남아있었다는 전설에 따라 검새골 즉 현조동 이라 불렀다 하며 서봉
마을과 병합 봉조리 2구라 하다가 지금은 현조리라 부르고 있습니다.
압록마을은 약 900년전 섬진강과 보성강의 푸른 물이 합류 하는 곳이라 하여
합록으로 부르다가 400여 년 전 마을이 형성되면서 천어가 많은 곳이라 오리
과의 철새들이 많이 날아드는 것을 보고 합을 압이라 대치하여 압록이라 기명
했다고 합니다. 빼어난 경치는 지금도 널리 알려져 여름철 물놀이 피서지로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이정마을은 압록2구 김해인 김창신이 고달면 두가리에서 거주하다 산사태로
마을이 폐허가 되자 물 건너 마을로 이거하였다고 하며 마을형성당시 주변에
고목이 된 배나무 정자가 있어 "배정이" 곧 "이정리"라 부르게 되었으며 기존의
마을과 합병되면서 압록2구가 되었다고 합니다.
승법마을은 조선시대 중엽 대홍수로 오지리가 폐허가 됐을 때 이주하였다하며
당시 법당이 있었기에 승법리라 하였으며 절 유적은 소멸되었고 1960년대까지
도기 굽는 가마와 "점촌"이 있었으나 폐촌되었다고 합니다.
명산마을은 1846년경 우곡면 초동리였으나 풍수지리비결에 와우혈인 이곳에 터를
잡고 명산이라 했다가 통명산 아래의 마을이라 하여 명산리라 개칭,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쌍구마을은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마을터가 쌍구 혈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며
구성 저수지옆 금성산 줄기에 양질의 고령토가 매장되어 있어 오래전부터 터를
잡고 청자, 백자, 분청사기 등을 굽는 가마터와 많은 양의 도자기 편들이 발견
되었으며 점터, 독골, 사기점 등 유지가 보이고 있습니다.
장성동마을 뒤로 우곡성 이라는 고성지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장승이
서있는 벅수거리여서 장승백이, 장승몰, 장선동, 장성동 으로 구전 된 것이라고도
하며 쌍구동과 장성동이 합병되어 구성리로 개칭되었답니다.
산수동 미산1구는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마을뒷산이 쥐혈이어서 산서동 이라 하던
것을 산자수명한 곳이라 산수동으로 고쳐 불렀다 합니다. 마을 앞에 약 2m의 미륵을
닮은 선돌이 있어 옛날부터 아이를 갖기 위해 여인들이 이 돌미륵에 100일기도하면
소원을 이루었다고 전해오고 있습니다.
번다몰 마을 미산2구는 양정지 들에 권씨들이 부유하게 100호 이상 살며 번성했기
때문에 권다몰이라 불렸으나 마을은 폐촌되고 자손들은 분산됐다고 하며 그 후 현
위치에 마을이 형성되면서 "권다몰"과 어음이 비슷하게 "번다몰"로 와전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미륵동 미산3구는 마을주변에 절이 많아 미륵굴이라 불리어졌다 하며 1801년 신
유교난 후 경상, 충청도의 천주교도들이 피신해 와서 옹기그릇을 구우며 살았다는데
폐촌 되었고 근래에 조선시대 16세기에 제작된 분청 사기편과 가마터가 발견되었고
도자기 태토를 얻는 대형 수비장으로 보이는 석축 구조물도 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곡성은 고대소설과 판소리의 소재는 되게 실제인물에 근거한 전승야담
이나 전설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러한 보편성은 인근 남원의 춘향전처럼 심청전
에도 그대로 적용되는데 설화소설이기에 일찍부터 근원설화에 대한 논의가 다양하게
전개되어 왔습니다.
심청전의 핵심이야기인 효녀설화, 개안설화는 여러 유사 형태가
있지만 곡성군의 옥과 현성덕산 관음사사적에 나타난 연기 설화만큼 효행, 인신공희,
개안이라는 구조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등장인물의 설정은 그 어느 설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비슷한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처럼 서로 인접한 곡성과 남원의 설화나 전설은 결국 조선시대의 효와 열을 구현
하는 심청전과 춘향전, 심청가와 춘향가가 되어 한국 고대소설이나 판소리의 2대
명작으로 성장하게 되었으며 곡성은 심청이야기의 모델이 되는 홍장이야기가 있는
고장으로 고대소설 심청전, 판소리 심청가의 탄생지이자 발원지로서의 역사적 의의를
지닌 고장이라서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이처럼 곡성은 수많은 이야기와 추억이 서려 있는 역사의 고장입니다.
특히 섬진강을 끼고 있어서 시원하면서도 편안한 정감을 느끼게 하고 있습니다.
금메달공인중개사는 고객님이 현명한 판단을 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여 고객님을
보필하고 있습니다.
고객님을 내 가족처럼 소중하게 생각하며 총명한 결정을 내리실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금메달공인중개사사무소 010-3061-7154번으로 연락을 주시면 성심성의껏
상담하여 드리겠습니다.
금메달공인중개사사무소의 등록번호는 가4105-1340호입니다.
고맙습니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