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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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 주택매매 리모델링 내부에 황토방 있음 전망이 좋은 주택매매
무안 주택 앞쪽이 넓은 평야로 펼쳐져 있는 단독주택 매매합니다.
무안 몽탄면 한적하고 조용한 곳 주택매매 주택내부 깨끗 즉시입주가능
무안군 몽탄면 사창리 주택매매합니다.
대지의 면적은 300㎡이며 건물은 99㎡입니다.
매매가는 1억2천만원이며 약간의 조정이 가능합니다.
내부구조는 방이 3개이며 주방과 찜질방이 별도로 있습니다.
기름보일러이고 방향은 남동향입니다.
건축년도는 1983년 1월20일이지만 내부 리모델링으로 인하여 내부가
신축처럼 깨끗합니다.
건물의 구조는 세멘벽돌구조이며 용도지역은 농림지역입니다.
집 앞으로 파레트 구조가 되어 있어 밖에서 휴식도 가능합니다.
조용하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시고 싶은 분에게 적합합니다.
본 주택이 자리하고 있는 사창리는 몽탄면 소재지로부터 동북쪽으로 약 4㎞
가량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우명산을 중심으로 자리 잡은 사창리는 다른 지역보다 인물도 많이 배출
하였지만 고대의 유물과 유적이 많이 발견되는 곳입니다. 특히 수많은 고인돌과
석곽묘 및 옹관묘는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를 재조명하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조선 중종 때 곡물대여기관인 社倉이 있었으므로 사창이라 했으며
원사창, 저두, 덕암, 초당산, 사동 마을로 이루어 졌으며 본래 무안군 석진면 지
역이다. 1910년 목포부에 속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저두리, 덕암리,
상주교, 용산, 사동의 각 일부를 합하여 무안군에 편입시켰고 1932년에 박곡면에
편입되고 1939년에 다시 몽탄면으로 개칭되었다고 합니다.
문헌으로 살펴본 지명의 변화를 보면 1789년의 호구총수에는 석진면 덕암리 사
창리 저두리가 나옵니다. 1912년의 자료에는 석진면 사창동 덕암리 사동이 나오며
1917년의 자료에는 석진면 사창리 저두리 덕암리 두암리 사창동 인평동 상주교 용
산리 사동 등으로 기록되어 있고 1987년의 자료에는 몽탄면 사창리 사동 원사창 저두
덕암 두암 등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본 주택이 있는 사동은 사창5리에 속하는 마을로 조선시대 곡물 저장 창고인 사창이
있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몽탄의 명산인 우명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으며 지형
이 소쿠리형으로 아늑한 느낌을 주며 뒤에는 우명산 칼바위와 돼지바위산이 있으며 옆에
는 나부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마을 앞으로는 호남선 철도가 놓여 있습니다.
승달산의 맥을 이은 우명산은 사창 삼거리 쪽으로 뻗어있는 맥이 소의 꼬리 부
분이고 이 마을 쪽으로 나있는 부분이 소의 머리에 해당하는 것으로 소가 영산강
쪽을 바라보며 울고 있다는 산이다. 이 산은 풍수적으로 귀한 형상이어서 숱한 인
물을 배출해낸 명산으로도 유명합니다.
이 마을의 입향조는 의령 옥씨 옥세진(자-사빈, 호-미로, 1722-1800)이며 그는
역도 토벌의 공로로 병조참의를 제수 받은 옥문곤(자-화백, 호-미운, 1705-1777)의
아들로 안동 길성에서 세거하였습니다. 세진은 30여권의 문집이 있을 정도로 영남학파
의 뛰어난 학자였으며 주변의 기대와 신망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하지만 조선시대 영
조임금이 아드님인 사도세자를 폐위하자 그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상소문을 올려 왕
의 미움을 사 유배를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처음 유배지는 아랫 마을인 초당산 마을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보
내던 세진은 후일 이 마을로 옮겨 와 정착하게 된 것이지요. 생전에 유배가 풀리지
않아 갑신년(1764년)에 그의 아버지인 옥문곤과 자손이 옮겨 와 이곳에 살게 되었
다. 후에 세진은 유배가 풀려 좌승지로 증직되었다고 합니다.
문헌을 통해 마을의 역사를 보면 1789년의 호구총수에는 이 마을 이름이 나오지
않다가 이후 1912년의 자료엔 석진면 사동으로 1917년의 자료엔 석진면 사창리 사
동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해서 이 마을의 설촌 연대는 옥세진에 의해서 1700년대
후반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 마을 후손들은 대대로 학계와 문단 등 여러 분야에 진출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데 특히 사창리 입구에 있는 호담우주항공전시관은 옆 마을 출신 전 공군참모총
장 의령옥씨 옥만호 장군이 고향 사랑의 실천과 우리 공군의 발전과정을 소개하고,
후세들의 교육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설립하여 2003년 무안군에 기증한 것입니다.
동각할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을 입구 가장골에는 참판옥공신도비와 미로옥선생유허비 등 두기의 비석과 옥
씨종족 노래를 기록한 표지석이 있습니다. 신도비는 남원부사와 병조참판을 지낸 옥경련
(자-덕후, 호-청강, 1829-1898)의 비인데 1894년 갑오년에는 병조참의를 지내기도
하였답니다. 그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 일로 진사동에서 거주하였답니다. 그의 호를 딴 문집
청강집이 남아있습니다. 미로선생유허비는 이 마을의 입향조인 옥세진의 비입니다.
마을에서 원사창 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에 5기의 고인돌이 놓여있는데. 세 기는 원
래의 형태를 잘 유지한 채 밭에 놓여있고 두 기는 옆의 잡풀이 우거진 곳에 묻혀
있습니다. 또한 가장골에서 옥반동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선돌이 놓여있으며 길이 195센티
미터 폭 110센티미터의 크기인데 주민들의 말로는 초당산 마을입구 초르뫼에 있는
할매선돌을 지켜보고 있다고 하는데 이곳의 선돌은 영감선돌이라 한답니다. 마을 뒤에 의
령옥씨 제각인 양촌제가 있습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입구에 표지석과
세장비가 서 있으며 1990년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이렇듯 본 주택이 있는 사창마을은 유명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었으며 풍수지리학적
으로 터가 좋아 앞으로도 유명한 인물들이 많이 탄생하리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꿈과 행복이 있는 마을 좋은 청사진을 기대할 수 있는 마을이기도 합니다.
사랑과 행복의 전도사 금메달공인중개사사무소는 고객님이 원하시는 좋은 매물을 중개
하여 드리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고객님을 보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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