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가지붕에도 나뭇가지에도 하얀 고드름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보니 정녕 계절은 겨울의 터널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크리스마스 성탄절이 코 앞 인데도 적막감이 흐르는 길거리엔 고요만이 나뒹굴고 있다.
경기 침체의 늪에서 꽁꽁 얼어붙어 있는 추위가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억누르고 있다.
어제도 두암동에 갔다. 요즘은 틈틈이 아파트부지 작업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의 집에 없는 낮 시간 보다 집에 있을 가능성이 많은 밤을 택해서 지주의 집을 방문하곤 한다.
방문한 주택의 창문을 바라보며 희비가 엇갈린다.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으면 사람이 있다는 증거가 되지만 불 꺼진 어두운 창가는 사람이 없을 가능성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초인종을 누른다. 연거푸 눌러도 아무런 대답이 없을 땐 뚜벅뚜벅 계단을 내려와서 경비실을 찾는다.
다행히 경비아저씨라도 있다면 인적사항을 물어볼 수도 있지만 경비실이 없는 곳이거나 비어 있을 땐 칼날 같은 추위와 싸우며 빈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편지 한 통을 남기고 그 자리를 돌아선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북구 운암동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는 금메달 공인중개사 양동선입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사장님께서 소유하고 계신 00동 119-25번지에 있는 토지에 대해서 혹시라도 매매의사가 있으신지 여쭙고자 방문하였습니다만 댁에 계시지 않은 관계로 부득이 서신을 남기오니 아래 전화번호로 연락을 해주시면 즉시 찾아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또한 타 부동산이라도 저에게 의뢰를 해주시면 내 가족 같은 마음으로 성실하고 명확하게 분석하여 고객님이 만족하실 때까지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끝으로 사장님과 제가 소중한 인연을 맺을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항상 건강하시고 가내에 행운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11년 12월 00일
금메달 공인중개사 대표 양 동선
전화:531-0000 HP: 010-3061-0000
사실 아파트부지 작업이란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터무니없는 가격을 요구하는가 하면 매매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소유자도 많기 때문이다. 일정 면적이상의 동의가 필수인 아파트작업 특성상 한 두 사람의 비협조로 일을 그르치는 것이 부지기수다.
또한 매입한다는 소문이 나면 지주끼리 합심하여 가격을 담합하기 때문에 수지가 맞지 않으면 시행사에서도 건축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다른 사람보다 싼 가격에 땅을 판 사람들은 이의를 제기하기 때문에 가격이 낮은 순서대로 매입하고 내 편의 사람들을 심어놓아 정보를 제공 받는 등
나름대로 자구책을 강구하는데도 불구하고 어려움이 많이 따른다는 사실이다.
편지를 두고 온 곳에서 전화가 왔다. 그 분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는 나무를 식재해 놓았기 때문에 평균가격의 2배를 받아야겠다는 것이다.
몇 년 전에 다른 팀에서 찾아왔을 때도 그랬었고 올해 초에 누군가 방문하였을 때도 그렇게 요구했다는 것이다.
평생 가지고 계시라고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꾹 눌러 참았다.
고객과 대화를 자주 시도하다보면 분명 협의 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구적표와 토지이용계획확인원, 건물배치도를 가지고 설명하면서 최대한 설득하여 간격차를 좁혀야 한다.
그래야만 부지작업의 성공률은 한층 높아지는 것이다.
지금 나는 또 다른 곳을 방문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며 책장을 넘기고 있다. 찬바람의 기세는 훨씬 부드러워졌다.
오늘도 기대만큼의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원하면서
아름다운 상념에 잠기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