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에 서울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철학관을 운영하려고 하는데 단독주택 2층이어도 괜찮으니 철학관 장소로 적합한 몇 개를 미리 봐달라는 것이다. 요즘은 신형원룸의 등장으로 주택보다는 원룸을 선호하여 비어있는 단독주택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하겠다고 답하고 일주일 후에 만나기로 하고 전화 받은 후 일주일 뒤에 광주에서 만났다.
처음 본 고객의 모습은 전형적인 한국여인상이었다. 날씬한 키에 둥그런 얼굴이 인자하고 편안해 보였다. 그러나 눈빛만은 강렬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기에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의뢰인과 함께 주택 3~4개를 살펴보았다. 아주 낡아 수리비가 많이 들어갈 집도 있고 아주 정갈하고 깨끗하게 수리 된 집도 있었으나 방향이 동향이라는 이유로 고개를 돌리는 집도 있었다. 사무실로 돌아와서 의뢰인이 맘에 드는 집으로 전화를 돌렸더니 임대인이 점집은 안 된다는 것이다. 다른 집에 전화를 드려도 똑같은 답변이었다. 처음에 철학관이라고 말씀드릴 때는 모시고 오라고 하더니 이제는 의뢰인을 보고 무속인으로 판단한 모양이다. 굿을 하거나 시끄럽게 하지 않게 영업을 한다고 해도 돌아오는 답변은 마찬가지였다.
서울에서 해주신다고 해서 찾아왔는데 책임지고 중개해 달라고 하셨다.
알았노라고 답변하고 이제는 주택보다 상가를 추천하기로 하고 대로변에는 임대료가 비싸기 때문에 안쪽상가로 안내해 드렸다.
예전에 슈퍼로 사용하던 자리인데 영업도 시원치 않고 연세 때문에 점포를 접고 비어있던 자리가 있었다. 방은 4개가 있으나 규모가 작아 단상을 꾸밀 수가 없는 것이 문제였다. 벽을 하나만 트면 해결 될 것 같았다. 임대인도 그렇게 해주시겠다고 하셨다.
의뢰인은 기분이 좋았는지 횟집에서 소주를 한 잔 사겠다고 하셨다. 애주가인 나는 흔쾌히 승낙하고 근처의 횟집으로 향했다. 팔딱팔딱 뛰는 농어를 안주삼아 거나하게 소주 한 병을 나누어 마셨다. 그리고 본인의 사주도 무료로 봐주었지만 정확하게 맞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의뢰인은 계룡산 부근에 계약을 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광주에 올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물론 계약금이 아깝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늦어 근처의 숙박시설로 안내해 드리고 돌아왔다.
그런데 그 뒷날 아침 8시경에 임대인에게서 전화벨이 울렸다. 뭔가 이상한 예감을 지울 수 없었다.
“엊저녁에 우리 애들이 왔다갔는데 애들이 교회를 다니기 때문에 무속인을 들이면 절대 안 된다고 하니 어쩔 수 없네요. 죄송합니다.”
잘 해결 될 것 같았던 일이 점점 미로 속으로 빠져 들고 있었다. 이젠 손님에게 어떻게 말해야할지 답답할 뿐이었다. 아침 10시경에 전화를 드렸더니 아직도 잠에 취해있는지 탁탁한 음성이 들려왔다.
“고객님! 임대인께서 전화가 왔는데 임대인의 아는 지인이 사용한다고 해서 사용해라고 했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나는 진실을 전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어젯저녁에 계약하자고 본인이 설득했을 때 내일하자고 여유를 부리더니 이런 결과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하루에도 천만번 바뀌는 거라서 마음에 들면 도장을 찍어야만 내 것이 된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낚시도 마찬가지다. 정확한 시점에 낚시 줄을 당기지 않으면 미끼만 빼먹고 줄행랑을 치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지난 일은 잊고 비좁은 골목 1층에 전세로 나온 집이 있었다. 주인은 대로변에서 영업을 하고 그 안쪽에 있는 집인데 방도 깨끗하고 마당에 조그만 텃밭도 있어서 간단한 식재료는 현장에서 해결할 수도 있는 곳이었다.
임대인이 쉽게 승낙을 해줘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수 있었다.
일주일 전 잔금 일에 방을 둘러봤더니 신을 모시는 단상을 직접 조립하고 있었다. 조립형 구조로 되어 있어 이사할 때 간편하게 옮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말도 많고 사연 많은 점집이 00처녀보살이라는 간판을 걸고 영업을 시작했다.
직업에 귀천이 없듯이 무슨 일에서나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를 산출해 낼 수 있으리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리고 꼭 성공해서 귀향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