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이른 새벽에 잠에서 일어났다.
명절인 추석도 다가오고 명절 전까지 일정이 바쁠 것 같아서 평일인 월요일 새벽에 벌초를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순천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는 비교적 한산했다.
어둠 속에 라이트를 켜고 질주하는 차량 사이로 희뿌연 안개만이 자욱하게 길거리를 지키고 있었다.
차량이 다가설 때마다 안개는 솜털 구름처럼 흩어지며 나그네에게 확 트인 길을 내어 주었다.
자동차 유리창을 뿌옇게 물들인 안개 조각들을 쓸어 내느라 와이퍼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새벽이고 어두 캄캄해서 그런지 산길로 향하는 구부러진 도로는 나그네가 착각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건물들이 들어서 있고 유난히 도로의 폭은 좁게만 느껴졌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전혀 보지 않았던 막다른 길이 나타났다.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정말 진퇴양난이었다.
도로의 폭이 너무 좁아서 차량을 돌릴 수도 없고 도로 아래는 낭떠러지라서 후진해서 나오는 짧은 거리가 몇백 리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다시 어둑어둑한 도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니 폐교가 눈앞에 나타났다.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비좁은 도로를 따라서 산중까지 학교를 다녔는지 신기하고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이 폐교를 법당으로 쓰고 있는데 갈 때마다 운동장에 주차를 하고 있지만 스님의 얼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누군가 주차에 대해서 시비를 걸거나 이의제기를 하지 않아서인지 나그네는 내 개인 주차장처럼 편안하게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다시 벌초할 도구를 준비해서 5분 남짓한 오솔길을 뒤뚱뒤뚱하며 올라갔다.
이곳이 묘지인지 잡초밭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나의 키만큼 큰 잡초들이 무리를 지어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어느 가수가 노래했듯이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부는 언덕에 이름 모를 잡초야, 한 송이 꽃이라면 향기라도 있을 텐데 이것저것 아무것도 없는 잡초라네.”
농부들이 농사를 지면서 가장 큰 애로사항이 잡초와의 싸움이듯이 잡초의 생명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굉장하다.
잡초는 생명력뿐만 아니라 적응력이 뛰어나서 어떠한 환경에서도 살아남고 번식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오늘 나그네는 이런 풀들과 치열한 샅바 싸움을 하기 위해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8기의 분묘를 감싸고 있는 풀들을 제거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비 오듯 쏟아지는 땀방울을 닦아내며 2리터의 생수를 두 병이나 마셔야 했다.
벌초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갑자기 무언가 허공을 휘젓더니 머리 뒤통수가 따끔했다.
말벌이 나그네를 공격한 것이다.
119에 신고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요즘 의료분쟁으로 어느 병원을 가나 의사가 부족해 진료를 못 한다는 말을 방송을 통해서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지역에서 벌초를 하다가 벌에 쏘여 사망했다는 비보도 접한 적이 있어서 쉽게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