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기 불황이 반영되듯 거리 곳곳에 유리창 광고가 넘쳐나고 있다.
간판은 대체로 일정한 규정을 따르며 깔끔하고 정돈된 인상을 주지만 유리창에 붙여진 스티커 광고는 대개 무질서하게 배치되어 지나가는 이들에게 불편한 시각을 안겨주곤 한다.
부동산 매물이 나올 때마다 신속히 광고를 부착하는 공인중개사들이 많지만 그들의 광고가 훼손되거나 뜯어지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하면서 마음이 상하는 일이 늘고 있다.
특히 내가 8차선 대로변에 부착한 유리창 광고가 연속적으로 철거되는 일이 생겼다. 그런데 바로 옆에 부착된 다른 중개사무소의 광고는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어 그 중개사무소에 소속된 중개보조원이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심증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명확한 증거가 없었기에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허탈하고 황당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매복 작전을 결심하고 범인을 추적하기로 했다.
유리창 광고는 대낮에 유동 인구가 많아 훼손되기 어렵다고 판단 나는 광고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새벽 2시와 5시 두 번에 걸쳐 확인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어젯밤 드디어 새벽 2시경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던 중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주문하지 않은 택배 곰 인형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곰 인형이 아니라 한 젊은 여성이었다. 순간 "악!" 하는 비명 소리가 나왔다. 그녀는 양말도 신지 않은 채 바지도 입지 않고 펜티만 입은 채 뱀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처럼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아마도 그녀는 자신의 집으로 착각하고 혼자서 새벽잠에 빠졌던 듯했다.
만약 아내가 이 장면을 목격했다면 광고 점검이 아니라 다른 목적을 가지고 새벽에 외출한 것으로 오해를 받을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나는 급히 112에 신고를 했고, "이곳에 바지와 양말도 신지 않은 여성분이 있으니 출동해 주세요"라고 전했다.
다행히 그 여성은 비틀거리며 바지를 입었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다른 곳으로 가려 했지만 성희롱 문제에 직면할 수 있었던 나는 그녀에게 어떠한 도움도 줄 수 없어 안타까웠다.
이미 신고를 해둔 상황이었기에 허위 신고로 오해받지 않기 위해 위치 파악을 신중히 했다. 그녀는 휴대폰과 신발을 잃어버렸다고 말하며 혹시 내가 그것들을 본 적이 있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경찰이 출동해 무사히 인계해 주었고 다행히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광고 훼손 문제로 시작된 일이었지만 그것이 결국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을지도 모를 작은 신호들을 되돌아보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예전에 한 마리 애견이 길을 잃고 우리 집 앞에서 머물고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관리소에 연락해 애견의 주인을 찾아주었고 이번 사건도 그와 비슷한 맥락이라 여겨졌다.
혹시 우리 집이 풍수지리학적으로 좋은 기운을 가진 명당이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풍수지리상 좋은 기운이 흐르는 곳이라면 사람이나 동물이 자연스럽게 머물거나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쉽게 해결되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나는 내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무언가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의 작은 친절이나 배려가 나와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기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