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서서히 멀어지고 있습니다.
나무들은 화려한 옷을 벗어내고 바람에 흩날리는 잎을 마지막 배웅하듯 내어주고 있습니다.
그 과정이 우리 일처럼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계약서 한 장, 도장 몇 번, 금액적인 결과물만 남아 보이지만
그 앞에는 수많은 과정과 시간 그리고 사람과 관계가 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공인중개사의 보수라는 건
단순히 숫자나 비율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설득, 판단, 책임, 법률, 감정 노동 그리고 사람과 삶이 얽힌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아니 계약서 한 장 쓰는데 왜 그렇게 많이 받아요?”
그럴 때마다 저는 속으로 웃습니다.
그 계약서 한 장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보이지 않는 시간이 들어갔는지 그들은 모릅니다.
어떤 날은 열 군데 넘게 매물을 보여드리고
어떤 날은 늦은 시간까지 세금과 규제 용어를 풀어 설명하고
어떤 날은 서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매도인과 매수인 사이에서
마치 중재자처럼 서 있어야 합니다.
가끔씩 식사 시간을 지키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가끔은
“왜 이런 집을 중개 했냐”
“이 문제는 당신이 해결해야 하는 거 아니냐”
하는 목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마음 한쪽이 쓸쓸해집니다.
아마도 우리가 하는 일이 직업 그 이상이라는 증거이겠지요.
법과 책임의 경계 위에서
참 흥미로운 건
중개업법과 관련한 판례들을 살펴보면 두 가지 관점이 공존합니다.
하나는
계약이 체결되는 순간 이미 중개 목적은 완성되었으니 보수청구가 가능하다는 입장과
다른 하나는
잔금까지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어야 비로소 중개가 끝난 것이라 볼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두 흐름은 서로 다른 듯 보이지만
그 안에는 공통된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공인중개사의 노동은 계약이라는 결과 순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앞 과정 전체에 존재한다.
결국 보수란 계약의 값이 아니라 과정의 값이라는 메시지입니다.
잠시 시선을 해외로 돌려보면
우리가 사용하는 수수료율이 과연 높은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에서는 매매 시 보통 5~7% 정도를 중개보수로 주고
대부분의 경우 매도인이 그 비용을 부담합니다.
영국은 보통 1~3%,
일본은 상한이 정해져 있지만 최대 3% 정도가 일반적입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중개보수는
분류·법정 상한·구간별 차등이라는 규제를 두고 있으며
대부분 1% 이하로 책정되어 있습니다.
이 비교를 들여다보면
우리는 결코 보수가 높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정해진 틀 안에 묶여 있는 구조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미래를 꿈꿉니다.
언젠가는
우리나라에도 미국처럼 매도인이 중개보수를 부담하고
공인중개사가 단순히 집을 보여주는 사람이 아니라
거래를 설계하고 책임지고 이끌어가는 전문가로 인정받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그날이 오면
허위 매물도, 감정적 밀당도, 부당한 감액 협상도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공인중개사가 작성한 계약서 한 장에서
돈이 아니라 가치를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집을 연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람의 삶과 삶을 잇는 다리입니다.
그 다리를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밤낮없이 고민하고 부딪히고, 배우고, 책임지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믿습니다.
정당한 보수는 언젠가 정당한 대우로 돌아온다.
그날까지
가을이 떠나고 겨울이 오더라도
우리는 묵묵히 오늘의 길을 이어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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